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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13 18:25 수정 : 2009.07.13 18:25

오태규 논설위원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 뒤 러시아와 일본이 한창 평화 협상을 벌이던 1905년 여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전쟁부 장관을 필리핀 시찰 명목으로 동아시아에 파견한다. 태프트 장관은 필리핀 방문 이후 일본에 들러 가쓰라 다로 총리와 비밀리에 만난다. 여기서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조선을 일본의 영향권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밀약이 이뤄진다. 바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가쓰라-태프트 협정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밀약이 맺어지자마자, 상원의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는 행정협정 형식으로 이를 승인한다. 미국이 중요한 외교 협정을 맺으면서 상원의 비준 논의를 피하려고 행정협정을 이용한 것은 가쓰라-태프트 협정이 최초이다.

이후 일본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조선의 식민화 작업을 착착 진행해 나간다. 고종은 미-일 사이의 이런 밀약도 모른 채 미국에 수차례 밀사를 파견하며 구원 요청을 한다. 당시 고종의 밀사 노릇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조선에서 20년간 영어교사로 일하던 호머 헐버트였다. 그러나 이미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고 있던 미국은 고종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친다. 고종은 미국의 반응이 여의치 않자, 다시 헐버트의 제안에 따라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을 비롯한 비밀 대표단을 보낸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을 폐위시킨다. 조선이 강대국 정치에 어떻게 휘둘렸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중-일 3국 협의체가 조만간 뜰 모양이다. 세 나라는 지역 문제가 아니라 환경, 경제 위기 등 세계적 문제를 다루는 장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반도에 밀접한 이해가 있는 세 나라가 만나 지역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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