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3 18:24
수정 : 2009.08.03 18:24
|
정석구 논설위원
|
조선시대 방랑시인이었던 김삿갓이 어느 날 환갑 잔칫집에 들러 시 한 구절을 써서 던졌다. “저기 앉은 저 늙은이 도대체 사람 같지 않네.”(彼坐老人不似人) 노인네의 아들들이 화를 내며 달려든 것은 당연한 일. 김삿갓은 태연히 다음 구절로 응대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앉은 것 같소.”(疑是天上降眞仙) 그러자 잘 차려진 잔칫상이 나왔고, 김삿갓은 푸짐한 음식과 술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풍자와 해학이 번뜩이는 격조(?) 있는 아부였다.
권모술수꾼으로 알려진 마키아벨리는 능수능란한 아부꾼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15세기에 피렌체(플로렌스)의 위대한 통치자였던 메디치가 로렌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에게 <군주론>을 헌정하면서 “시대가 위인을 찾고 있는데, 오직 로렌초만이 시대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뿐”이라는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그는 결코 로렌초가 당대 최고의 인물이라는 식의 직접적인 아부는 하지 않았다.(리처드 스텐걸의 <아부의 기술>)
얼마 전 김완주 전북지사가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을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감사편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님의 결단과 추진력 덕분에 드디어 (새만금 사업이) 본격 개발에 접어들게 됐다”고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대통령님의 훈풍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등 낯간지러운 표현도 적지 않았다. ‘명비어천가’ 논란이 일자 김 지사는 “어떤 것이 전북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둘러댔다.
스텐걸은 “챙길 이익이 있을 때 아부는 궁극적으로 전략”이라고 했다. 김 지사도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름대로 ‘전략적 아부’를 한 것일까. 그렇더라도 편지의 형식과 내용이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아부의 품격도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 뒷맛이 영 씁쓸하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