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5 22:26
수정 : 2009.08.0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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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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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이름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사실조차 잊힌 채 쓰이는 경우가 있다. 고유명사의 보통명사화다.
물건·장소·발견·이론 따위의 근원이 되는 사람 이름, 곧 에포님(eponym)이 대표적이다. 19세기 말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의 영지 관리를 맡았다가 소작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철저히 고립돼 결국 석 달 만에 물러났던 퇴역 육군대위 찰스 보이콧은 ‘불매 동맹을 하다’는 뜻인 ‘보이콧’의 에포님이다. 범죄 용의자를 적법 절차도 거치지 않고 바로 처형하도록 한 18세기 말 미국 버지니아의 치안판사 찰스 린치, 포르투갈에 외교사절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들여와 프랑스에서 유행시켰던 장 니코는 각각 ‘린치’와 ‘니코틴’으로 이름을 남겼다.
상품 브랜드로 제조자 이름을 썼다가 그런 종류의 상품 전체를 뜻하는 단어로 변한 경우도 많다. 첨단 의류소재 고어텍스는 엔지니어 출신 윌버트 고어가 1976년에 개발한 상품 이름이었고, 호치키스는 총기 제작 기술자인 벤저민 버클리 호치키스가 그 기술을 응용해 만든 스테이플러(종이찍개) 브랜드였다. 우상 또는 상징, 곧 아이콘(icon)도 있다. 필리핀에서는 한 경기에 혼자 50점을 올린 한국의 농구선수 신동파가 40년 넘게 ‘행운’ 또는 ‘성공’의 상징이다. 일이 잘 풀리면 ‘신동파’ 또는 ‘동파’라고 외치는 식이다.
며칠 전 심장마비로 타계한 조오련도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수영선수의 대명사로 쓰였다. 무작정 상경해 정규 수영수업을 받은 지 2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그는 재능에 지독한 노력만 더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그 또래 ‘촌놈’들의 기백을 상징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대한해협 횡단을 준비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으로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려 했다. 그렇게 이름을 가꾸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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