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1 18:20
수정 : 2009.08.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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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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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이른바 ‘문명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보기에 정말로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삶의 기준을 돈에 두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끝까지 이익을 추구하며, 온 세상을 저 혼자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비쳤다. 체로키족 주술사였던 ‘구르는 천둥’은 “문명인들의 삶은 남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고 묘사했다. (류시화 옮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문명인’들의 인간관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홉스는 “자연에서 인간의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라고 표현했다. 인간들은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적이 되어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굴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고 보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모든 인간은 대지 위에서 살아갈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홉스도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 모두 자기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원주민은 “서로 나눔으로써, 모두를 사랑함으로써 추구하는 것을 얻었다.” 홉스는 각자의 권리를 상호 양도하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생명과 생활수단을 방어할 권리는 결코 양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64명이 무더기 구속됐다. 일자리, 곧 목숨을 빼앗으려는 회사에 저항해 싸운 것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회사와 사회로부터의 퇴출이었다. 나눔과 사랑은커녕 남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챙기게 하는 나라를 정상적이라고 할 순 없다.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계약은 강자의 일방적 폭력이기에 원천무효 아닌가.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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