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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3 20:38 수정 : 2009.08.13 20:38

김종구 논설위원

눈물은 감정 표현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표상이다. 그래서 눈물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에도 영향을 받는다. 프랑스 역사학자 안 뱅상뷔포가 쓴 <눈물의 역사>를 보면, 18세기까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찬양받는 시대였으나, 19세기 들어서 점차 그런 풍속이 변해갔다고 한다. 특히 남자들이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고뇌를 드러내는 행위는 남성의 품격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회적인 눈물 현상도 추적해 프랑스 혁명 기간인 1789년 6월에서 10월까지를 “눈물에 젖은 몇 주간”이라고 이름붙였다. 혁명기를 맞아 그동안 문학이나 연극 등에서 나타났던 ‘눈물의 전염’ 현상이 실제 현실에서 재연된 시기였다는 것이다.

눈물로 치자면 우리 민족도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본래 심성이 눈물에 약한 민족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 독재와 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는 마르지 않는 ‘눈물의 샘’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올해도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눈물로 축축이 젖어든 경험을 했다.

눈물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가짜 눈물도 있다. 최루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전형적인 강요된 눈물이다. 그래도 ‘눈물의 총량’으로만 따진다면, 최근 우리 역사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시기는 아마 1980년대 후반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무렵 최루탄 생산업체 삼영화학 사장은 개인소득세 납부실적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눈물의 시대가 오고 있다. 쌍용차 농성 해산 작전에는 헬리콥터가 동원돼 하늘에서 최루액이 뿌려졌다. 경찰은 좌우사방으로 최루액을 발사할 수 있는 특수버스까지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눈물빼기 작전에 들어갔다. 민초들이 보유한 눈물의 재고량이 얼마나 될지 시험해보겠다는 심사일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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