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7 18:27
수정 : 2009.08.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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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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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 시절 유럽 왕실의 사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그는 복잡하고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뽐내느라 1m 가까운 머리장식을 붙이고 다녔다. 보석과 옷, 무도회에 들어가는 비용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결정판은 베르사유 궁전 한쪽에 만든 자신만의 에덴동산이었다.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농부의 아내들을 데려와 소젖을 짜게 했고, 목동들은 실크 리본을 목에 두른 양들을 돌봤다. 또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혔다. 비용은 끝없이 늘어갔지만 사치는 그치지 않았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에겐 ‘적자 왕비’라는 별명이 붙었고, 결국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는 대표적인 짠돌이였다. 그도 앙투아네트처럼 몸에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으며, 공식 의상을 3천벌 갖고 있을 정도로 사치스런 생활을 즐겼다. 가진 보석이 600개가 넘었고, 매일 몸치장을 하는 데만 두 시간씩 걸렸다. 하지만 나라 재정 운용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까다로웠다. 심지어 스페인과 전쟁을 할 때조차 승패보다 전쟁으로 인한 이해득실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재정이 안정되자 세금을 많이 거둘 필요가 없었고, 그 덕분에 민심을 얻어 왕권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나라의 재정이 번영과 혁명을 갈랐고, 두 여인의 운명도 결정했다.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국책사업에다 친서민 정책을 한다고 각종 인기 정책이 쏟아내고 있으니 나라 곳간이 성할 리 없다. 적자 재정이라고 정부가 당장 무너질 일이야 없겠지만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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