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25 18:20
수정 : 2009.08.25 18:20
|
김종구 논설위원
|
인플루엔자란 단어의 원산지는 이탈리아다. 1743년에 이탈리아 감기가 맹위를 떨쳤는데, 이탈리아어로 ‘추위의 영향’(influenza di freddo)이란 말에서 인플루엔자가 유래했다고 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입자 표면에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민산 분해효소(NA)라는 단백질이 붙어 있는데, 이 두 단백질의 형태에 번호를 붙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구분한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의 변종 바이러스는 ‘H5N1’이고, 요즘 문제가 되는 신종 플루의 바이러스는 ‘H1N1’이다.
그런데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피해를 줄 때 계급 차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근 미국 보스턴 보건당국이 조사한 바로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의 신종 플루 감염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은 이 지역 인구의 4분의 1이지만 감염 환자의 37%나 차지했고, 인구의 14%밖에 안 되는 히스패닉계는 감염 환자의 3분의 1이 넘었다. 인종적 특성상 이들이 인플루엔자에 약한 게 아니라 빈곤 등 사회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보건당국은 분석한다.
역사적으로도 전염병의 최대 피해자는 하층 계급이었다. 1994년 인도의 수라트 슬럼지역에서 유행성 폐렴이 발생하자 의사들의 80%가 병원 문을 닫고 달아난 예도 있다. 거기에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주로 부유층과 부자 국가들의 몫이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신석기 혁명, 고대 유라시아 세계의 탄생, 16세기 근대 세계 체제의 형성을 인간과 병원균의 공진화(coevolution) 과정에서 일어난 세 가지 역사적 계기로 꼽은 바 있는데, 최근 일부 전염병학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인간과 병원균 관계를 재편하는 네 번째 변화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책당국자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 같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