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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03 18:33 수정 : 2009.09.03 18:33

신기섭 논설위원

국가정보원이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이른바 ‘패킷 감청’을 법원으로부터 허락받은 사실이 얼마 전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기법은 ‘사이버 망명’도 무력화시키는 막강한 것이다.

요즘은 도청이 규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이 되어 있지만, 도청이 수사에 쓰이기 시작한 초창기엔 미국·독일 같은 서방에서도 합법으로 여겼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1994년 연구보고서 ‘과학적 수사방법과 그 한계’를 보면, 해방 직후 미군정청 수사기관도 우리나라에서 도청을 수사 수단으로 활용했다. 정부 수립 뒤에도 도청은 널리 쓰인 것으로 추정되나, 1980년대까지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하나의 사례를 78년 10월 대법원 판결에서 볼 수 있다. 75년 충청남도 온양에서 열린 한 정당의 지구당 회의 장소에 경찰관이 도청기를 설치했다가 발각돼 주거침입죄와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전지법은 두 가지 죄를 모두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주거침입죄만 인정하고 말았다.

미국 학자 이선 내덜먼의 책 <국경을 넘나드는 경찰들>을 보면, 도청 관련 법규를 만든 선구자는 1968년에 법을 제정한 미국과 독일이다. 49년부터 제한적으로 수사기관의 도청을 허용했던 독일은 테러활동 단속을 위해 도청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그 한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청 관련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조직범죄 수사 필요성이 법 제정의 주요 동기였다. 특이한 것은 프랑스의 모호한 태도다. 이 나라는 수사기관의 도청이 흔한데도 관련 법을 만들지 않다가, 91년에야 법 제정에 나섰다.

한편 우리나라는 92년 대선 때의 이른바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계기로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도청의 폐해를 막자는 정치권의 합의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패킷 감청’까지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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