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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5 18:02 수정 : 2009.09.15 18:02

함석진 기자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은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올바른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넘겨지지 않는다. 플라톤 시절부터 이어온 끝도 없는 철학 논쟁의 주제여서가 아니라, 인간 개별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리는 불량배와 한판 붙을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와 상관없는 저 사람들을 위해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삶의 영역에서 정의는 곧잘 공정함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성보다는 내재된 본능이나 감정의 지분이 크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팀의 실험 결과, 인간이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반응하는 뇌의 부위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의 그것과 일치했다. 거친 결과지만 공정함을 인간의 기본 욕구로 볼 수도 있다는 단초는 흥미롭다. 영국 레스터대학 잭 바발렛 교수는 정의의 심리적·사회적 동력으로 분개심과 복수심을 꼽기도 한다. 김우창 교수는 <정의와 정의의 조건>에서 그의 말을 받아 “정의를 포함한 모든 도덕적 당위는 자칫 펴지 못한 자아의 확대를 위한 원한의 기획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의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자기 안에 내포함으로써만, 진정한 인간 질서의 방법론이 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싸고 좌와 우로 갈린 미국이 시끄럽다. 양쪽 모두 정의를 외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의 편지글을 빌려 “의료개혁은 세세한 정책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성격과 사회정의의 근본 원리에 관한 문제”라고 했고, 공화당은 “시민의 돈을 빼앗아 거리에 뿌리는 것이 미국의 정의냐”고 반문한다. 존 롤스는 “정의는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없는 상태”라고 한마디로 정리했지만, 미국의 현실은 정의의 정의조차 버거워 보인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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