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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22 18:32 수정 : 2009.09.22 18:32

오태규 논설위원

1840년대 독일 바이에른에서 가축상을 하던 헨리·이매뉴얼·메이어 리먼 등 세 명의 유대인 형제가 목화산업이 한창 번창하던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로 이민을 왔다. 이들은 1850년 무역 및 직물회사를 차리고, 자신들의 성을 따 리먼 브러더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남북전쟁 이후 격변기인 68년 본거지를 뉴욕 맨해튼으로 옮겨 주식 및 채권 거래에 뛰어들었다.

이후 리먼 브러더스는 조사연구·유통·교역·금융 등에서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며 착실히 부와 명성을 쌓았다. 2008년 9월15일 파산 직전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세계 4대 투자은행의 자리를 지키며,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했다. 뉴욕 본사와 런던·도쿄의 지역본부 외에 전세계에 40개 사무소를 운영했고,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재 등으로 이뤄진 2만5000명의 전문 트레이더를 거느렸다. 그러나 150년 전통의 철옹성처럼 보였던 이 회사도 지난해 전세계를 휩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폭풍을 견뎌내지 못하고 몰락했다. 혼자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금융공황을 불러오는 도화선이 됐다.

최근 이 회사의 부실채권 및 전환주식 담당 부사장을 지낸 로런스 맥도널드가 파산 과정을 내부인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밝힌 <상식의 실패>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엔 한국의 산업은행이 쓰러져 가는 리먼 브러더스를 세 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사들이려 했던 사실이 나온다. 천만다행으로 헨리 폴슨 당시 미국 재무장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리처드 풀드 회장이 거부하는 바람에 협상은 결렬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리만 브러더스’(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당시 재정기획부 장관)가 어떤 생각으로 침몰중인 ‘타이타닉호’를 사들이려고 했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에 싸여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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