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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5 19:14 수정 : 2009.10.05 19:14

신기섭 논설위원

8살 어린이를 성폭행한 사람에게 12년형이 내려진 것을 계기로 성폭력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다. 많은 사람이 특히 분노하는 데는 피해자가 힘없는 어린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린이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게 지금은 상식이지만, 이런 인식이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어린이’, ‘아동’, ‘소년’ 개념이 형성된 때는 대체로 1920년대 전후로 본다. 물론 그 전에도 용어는 있었다. 조은숙 단국대 연구교수가 쓴 <한국 아동문학의 형성>을 보면, ‘소년’은 신라 경덕왕 4년(745년)에 ‘소년감전’이라는 관서가 설치됐다는 기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아동’은 조선시대에 꽤 쓰였는데, <훈민정음 합자해>, <동국세시기> 등에서 예를 볼 수 있다.

‘어린이’는 1920년대에 만들어진 단어로 흔히 알지만, 말 자체는 17세기 문헌에도 등장한다. 계몽 서적인 <경민편>(1658년 간행본)에 ‘어린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동몽선습언해>(1797년 간행본)는 ‘장유유서’를 ‘얼운과 어린이’의 차례라고 번역해 놨다.

옛날에 이런 단어들은 생물학적으로 ‘어른’이나 ‘늙은이’에 대비해서 쓰인 반면, 1900년 이후에 오면 특정한 시각이 담긴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1900년대에는 ‘소년’이 ‘새로운 지식과 문물을 수용·창조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부각됐다. 또 자녀 교육열이 높아지기 시작한 20년대에는 ‘낡은 윤리나 상황에서 해방시켜, 어른들과 다른 조건에서 새롭게 키워야 할 존재’로 ‘어린이’가 등장하게 된다고 한다. 어린이가 특별히 더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지금 어른들에게 ‘어린이’가 과연 어떤 존재로 취급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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