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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8 18:35 수정 : 2009.10.08 18:35

권태선 논설위원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에 연패하고 있던 2006년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이란 책을 내놓았다.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에 계속 밀린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프레임 전쟁에서 보수주의자들에게 패배한 탓이라는 레이코프의 주장에는 여론전에서 밀리던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들에게도 솔깃한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란 실재하는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거나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창조하도록 해주는 심적 구조다. 사물에 대한 이름짓기에도 프레임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이라 이름지었다. 이런 이름은 침공을 받은 이라크는 테러집단으로, 미국은 테러를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최근 어린이 성폭행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킨 사건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문제를 처음 제기한 한국방송 <시사기획, 쌈> 쪽은 피해 어린이에게 나영이란 가명을 부여하고 사건을 ‘나영이 사건’으로 명명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를 별생각 없이 따랐다. 다른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건도 피해자 이름을 사건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문제는 이런 이름짓기가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남성 중심의 성인식을 프레임화한 것이란 점이다. 이를 통해 가해자는 숨고 피해자가 이중 삼중의 추가 피해를 보는 일이 계속됐다. 그런데 이번 사건 이후 2차 가해의 위험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일부 언론에서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재명명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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