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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12 17:57 수정 : 2009.10.12 17:57

함석진 기자

어릴 적 논두렁 옆 둠벙(물웅덩이)만한 놀이터가 없었다. 개구리밥을 살살 걷어내면 물방개부터 ‘슝’ 물길을 냈다. 물방개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물방개는 가끔 물 위로 궁둥이를 삐죽 내밀어 물방울을 달고 후두둑 헤엄쳐 들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잡고 싶었지만, 늘 허탕이었다. 어느 날 개구리밥 사이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둠벙으로 몸을 던졌다. 두 손으로 잡긴 잡았는데, 뱀처럼 쭉 미끄러지는 게 아닌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논두렁을 달려 나왔다. 드렁허리란 놈이었다. 뱀만한 덩치에 생긴 것은 미꾸라지를 그대로 닮아 시골 사람들은 왕미꾸라지라고 불렀다. 논바닥을 뱀처럼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했던 적도 많았다.

30여년 전 그 기억 속 드렁허리를 그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전남 장흥의 한 마을이었다. 드렁허리가 지천이었다.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것들이 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일까? 생명의 씨앗들이 구름으로 떠돌다가 비가 되어 내린 것일까? 이 녀석들은 자라면서 성전환을 한다. 태어날 땐 모두 암컷이지만, 몸길이가 40㎝쯤 자라면 수컷으로 바뀐다. 옛사람들은 약재로도 썼다. 드렁허리는 구멍 뚫기 대장이다. 논흙을 헐겁게 해 벼 생장에도 도움을 주고 해충의 애벌레들을 잡아먹어 도움을 주지만 논두렁에 자꾸 구멍을 내 논물을 마르게 하기도 한다. 이름도 논두렁헐이에서 왔다. 한자로는 웅어(熊漁)라고도 하는데, 구멍을 뜻하는 옛말 곰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논두렁마다 물길이 콘크리트로 바뀐 것도 드렁허리 씨를 말린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다음주 4대강 사업이 기어이 시작될 모양이다. 개발의 이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생명이 아파할지…. 죽어도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은 왜 그렇게 독선적인지….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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