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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14 18:31 수정 : 2009.10.14 18:31

여현호 논설위원

철권(鐵券)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일종의 공신 목록이다. 기와 모양의 철판에 공적의 내용과 함께, 그 소지자와 후손에게는 죽을죄를 범하더라도 대역죄가 아닌 한 죽음을 면해 준다는 문구를 담았다. 반으로 잘라 왼쪽은 공신이 지니고, 오른쪽은 관청이 보관해 나중에 맞춰보도록 했다. 공훈의 크기에 따라 사형을 면해 주는 횟수도 달랐다. 공이 큰 대신에게는 열 차례까지 사형을 면제하기도 했다. 서기 877년 당 소종이 반란 평정에 공이 컸다며 진해진동군절도사 전류한테 준 철권에는 본인에겐 아홉 차례, 후손에겐 세 차례의 사형 면제 특권을 준다고 쓰여 있다.

철권이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명나라의 초대 재상인 이선장은 명 태조 주원장의 사돈으로, 으뜸가는 개국공신이었다. 죽을죄를 면해 준다는 고명철권(誥命鐵券)을 둘씩이나 받았다. 그런 그도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들을 사정없이 숙청한 주원장의 칼날을 피하진 못했다. 이선장은 나이 77살에 대역죄에 연루돼 식구 70여명이 모조리 처형당하고 자신은 자결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들이 연일 입길에 오르내린다. 온갖 범법 의혹이 있는데도 제대로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이다. 대통령의 사위인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수십억원대의 주가조작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대통령의 사돈 소유인 한국타이어는 10여년 동안 여러 명의 노동자가 돌연사했는데도 검찰로부터 고작 벌금 1000만원을 구형받았다. 대통령 사돈의 형이 경영하는 효성그룹에 대해선 해외 비자금 조성, 주식 편법증여 등 ‘범죄 개연성이 높은’ 구체적 첩보가 지난해 초 이미 검찰 손에 들어왔는데도 1년 반이 넘도록 본격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방위산업 관련 비리 의혹도 기소중지 상태다. 얼마나 큰 공훈을 세우고, 얼마나 대단한 철권을 받았기에 그럴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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