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21 18:19
수정 : 2009.10.21 18:20
|
여현호 논설위원
|
어떤 나라가 부자나라인지 가를 수 있는 명쾌한 국제적 기준은 없다. 국내총생산(GDP)이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순위가 있지만, 그런 수치로 한 국가사회의 발전 정도를 다 평가하지는 못한다.
‘부자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럽연합(EU) 가입 여부도 기준은 된다. 그런데 이들 기구에 가입하려면 경제력만으론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1961년 창립 때 매년 국내총생산의 0.7%씩을 갹출해 저개발국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로 쓰자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실제 다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의무규정의 하나로 남아 있다. 1996년 가입한 한국은 개도국 자격으로 이들 의무규정의 상당 부분을 유보 받았다.
유럽연합도 1993년 코펜하겐 정상회의에서 ‘민주주의·법치·인권·소수민족 보호를 보장하는 제도의 확립’, ‘시장경제 체제 유지 및 유럽연합 경제와의 조화 능력’, ‘회원국으로서의 의무 준수 능력’ 등 3개 기준을 충족해야 신규로 가입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사형제 폐지도 요구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부자나라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규모는 국민총소득 대비 0.07%(2007년)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5분의 1 수준이다. 기후변화협약에선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는 ‘부속서 1 국가’, 곧 선진국 편입을 한사코 회피하는 처지다. 정부는 집회·표현의 자유 등 시민의 기본권을 예사로 침해한다. 경제 규모로 봐도, 1인당 국내총생산이 부국의 기준이라는 2만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을 여전히 ‘성장 동력이 큰 11개 신흥경제국’(N-11)으로 분류한다.
미국 국방부가 얼마 전 “한국·일본 같은 부국(富國)은 아프간을 발전시킬 수단을 갖고 있다”며 경제적 지원을 은근히 요구했다. 저개발국 지원은 당연한 의무이고 아프간 파병을 피하려면 돈을 내야 할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왠지 낯간지럽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