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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2 18:32 수정 : 2009.10.22 18:32

권태선 논설위원

중국 지린성 훈춘에는 비우성이란 성이 있다. 요금시대 토성의 전형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이 성은 전체 둘레 2023m 가운데 일부만 뚜렷한 둔덕 모양으로 남아 있다. 연변대학의 김관웅 교수에 따르면 이 성터는 여진족의 유적이지만, 조선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 이 지역에서 여진족들과 더불어 어울렸다는 사실이 <용비어천가>에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만강 주변 지역에는 한민족, 여진족, 몽골족 등 다양한 종족들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력하며 삶을 가꿔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비우성 서남쪽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 시기의 성으로 추정되는 온특혁부성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유적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보듯이, 주변국들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 사관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민족의 흥망이 교대했던 이 지역을 한 나라의 강역사의 범주에 가두려는 것은 편협한 일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우리 민족이 성지로 여기는 백두산은 청나라 황실의 기원 전설인 ‘장백산 3선녀 전설’의 고장이기도 하다는 점을 예로 든다. 까치가 준 열매를 먹고 수태한 선녀가 낳은 아들을 청 황실의 시조로 묘사한 이 전설을 연구한 김 교수는 다양한 역사적 문헌에 대한 고증을 통해 전설에 나타난 지명이 현재 중국의 훈춘 지방에서 북한의 회령에 이르는 두만강 유역임을 확인해냈다고 한다. 그는 따라서 만주족 초기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이자 중국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사관으로 이를 어느 한쪽의 것으로만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역사 해석의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경청해야 할 지적이 아닌가.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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