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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6 22:05 수정 : 2009.10.26 22:05

함석진 기자

시골 뒷산엔 밤나무가 많다. 밤이 실해 욕심이 나도, 마을 사람 누구도 밤을 주워 가지 않았다. 몇 해 전 산 주인인 도회지 사람이 찾아와 밤을 주워 간 마을 사람 한 명을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밤은 매년 속절없이 땅에서 썩어갔다. 소유는 배부른 단어지만, 내 것 아닐 땐 무서운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린 늘 소유를 소유하고, 소유에 소외되는 삶을 산다.

뭔가를 갖는 행위는 남들과 함께 쓰는 공유재를 파괴와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가장 소홀하게 관리된다”고 했다.

한 마을에 아무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공용 저수지가 하나 있다. 물 반 고기 반인지라 마을 사람은 물론 외지 사람들까지 온종일 북적댄다. 언제든 물고기 씨가 마를 일이다. 이를 막을 방법은? 저수지를 사유화하거나 공동으로 규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주로 전자의 방법을 써온 것이 자본주의 경제다.

마이클 헬러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리드록 경제>란 책에서 현대인들에게 소유의 역습을 경고한다. 그리드록은 교차로에서 차가 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그의 눈에 인간은 촘촘하게 쪼개지고 갈라져서 지나치게 많아진 소유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군상으로 비친다. 의학이 그렇게 발달했는데도 왜 신약은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것일까? 특허의 그물 때문이다. 한 업체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고도 판매를 포기했다. 제품을 내려면 수억달러 들여 개발 과정에 줄줄이 걸린 수십개의 특허권을 얻어야 한다.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할지 모를 신약은 그렇게 묻혔다.

신종 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만들 수 있지만 팔지는 못한다. 스위스 업체가 가진 특허 때문이다. 사람도 살려야 하고, 권리도 존중해야 하는 세상. 그 엉킨 소유의 단상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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