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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9 18:13 수정 : 2009.11.09 18:13

함석진 기자

‘0’과 ‘1’의 디지털 시대. 인간과 숫자의 거리는 외려 벌어지는 듯하다. 성마른 기계 앞에서 에둘러 거스름돈 더하고 뺄 일도 없다. 주변에 널린 생명 없는 숫자들은 이제 기호로만 작동한다. 무뎌진 우리의 감각은 이제, 그것들이 가진 온전한 덩치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1조. 무심하게 읽힌다. 그것이 돈이면 내년 4대강 사업비의 6분의 1이고, 정부가 국회에 낸 새해 예산의 292분의 1일 뿐이다. 그러나 1조초를 거슬러 가면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에서 사라진 시점을 만난다. 조선 건국은 194억초 전,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은 불과 20억초 전이다. 1조는 그렇게 무겁다.

숫자는 명백하고 단순한 속성을 지닌지라 우리의 직관적 판단을 자주 돕는다. 그러나 우리의 허름한 숫자감각 아래서 직관은 곧잘 사고를 친다. 병원에서 정밀검사 뒤 신종 플루 확진 판정(양성)을 받았다면? 정밀검사인 ‘실시간 유전자 증폭’ 방식은 정확도가 95%라고 한다. 환자는 의심 없이 신종 플루에 걸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뜯어보자. 한 병원을 의심환자 1000명이 찾아왔고, 이 가운데 20명가량이 실제 신종 플루 바이러스를 가진 환자라고 가정한다(10월 말 통계로 추정). 정밀검사를 하면 20명의 95%인 19명이 양성으로, 또 바이러스가 없는 980명 가운데서 49명(980×0.05)이 양성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결국,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 조건 아래서 실제 신종 플루 바이러스를 가졌을 조건부 확률은 27.9%에 불과하다.

지금 웹에서는 2012년 지구의 멸망을 다룬 영화 개봉에 맞춰 다시 멸망론이 한창이다. 수학자인 존 파울로스는 저서 <숫자문맹>에서 초능력, 별점, 종말론 같은 것들은 수리적 상식만으로도 간단하게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인간의 수적 무지다. 나태함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신 오류’로 똘똘 뭉친.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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