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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꿈’ |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에서 오늘 새벽까지 치러진 유럽연합 헌법 찬반 국민투표도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한 모양이다. 거침없이 전진하던 유럽 통합 가도에 만만찮은 복병이 나타난 셈이다. 하지만 유수한 독립국들이 스스로 주권을 유보해 ‘세계국가’를 만들려는 이 실험의 원대함이나 반세기에 걸친 지난 여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난관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투표 결과의 정치적 의미와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대서특필되고 있으나, 정작 유럽헌법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별다른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의 대통령과 외무장관직이 신설된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책 한 권은 족히 될 방대한 내용의 유럽헌법안은 전문과 네 부문, 그리고 다섯 가지 기록서와 세 가지 설명서로 이뤄져 있다. 59개 항으로 된 1부는 유럽연합의 ‘정의와 목적’에서부터 권한·제도·재정 등 통치기구를 규정한다. 2부는 2000년 니스에서 이미 채택된 ‘유럽연합 기본권헌장’이다. 유럽연합과 회원국 사이의 권한행사를 규율해 가장 복잡한 제3부는 자그마치 342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그 기본 원칙은 ‘제한적 개별수권 원칙’이다. 유럽연합에 귀속된다고 명시되지 않은 모든 권한은 회원국에 유보된다는 것이다. 또 회원국 의회는 유럽연합의 입법 행위에 사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치적 사전 경보장치’도 마련됐다. 10개 항으로 된 4부는 일반규정과 최종규정을 담았다.
다른 부분이 유럽의 정치통합을 위한 기술적 규정이라면, 2부 기본권헌장은 유럽이 통합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평등·정의·연대’의 정신을 담고 있다. ‘무료 직업 알선을 받을 권리’ ‘예방의료에 접근할 권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헌법이나 미국 헌법에서 성큼 더 나간 인권의 확대로 평가받는다. 이 원대하고도 복잡한 유럽의 꿈이 어떻게 실현의 길을 찾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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