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16 18:18
수정 : 2009.11.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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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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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중심복합도시의 이름이 ‘세종’으로 결정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2월21일이다. 당시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회는 최종 후보에 오른 한울, 세종, 금강 가운데 세종을 낙점했다. 조선시대 명군이었던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한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그럴듯한 작명이었다.
정치·경제·문화·국방 등 여러 측면에서 조선을 반석에 올려놓은 세종대왕의 치적을 생각하면 ‘세종’은 국정을 총괄하는 행정도시의 이름으로 제격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정치의 핵심에 놓고 백성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민본주의를 실천했던 군주였다. 또한 국가 대사를 논할 때 신하들에게 “서로 토론하여 보고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할 정도로 토론의 정치를 중하게 여겼다. 비록 절대 왕조시대의 국왕이었지만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정사를 펼친 것이다. 세종대왕의 통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청계천 정비 공사다. 태종은 청계천 공사를 위해 태종 12년 개천도감을 설치하고, 전라·경상·충청에서 뽑아낸 5만명을 투입해 한 달 만에 개천 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세종 3년 대홍수로 청계천 정비 필요성이 제기되자 세종대왕은 이때부터 10년 동안 농한기만을 이용해 보수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김진섭, <조선의 아침을 꿈꾸던 사람들>)
세종대왕의 이러한 통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세종이란 이름의 행정도시가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기업도시로 바꾸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만약 그리되면 세종이란 도시 이름도 사실상 그 의미를 상실할 것 같다. 정치 스타일이 세종대왕과는 정반대인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행정도시로서의 세종시가 백지화된다면 이는 역사의 우연일까, 필연일까.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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