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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9 18:23 수정 : 2009.11.29 18:23

오태규 논설위원

일본 가와사키에 있는 메이지대학 이쿠타캠퍼스 안에는 옛 일본 육군의 비밀병기 연구기관인 노보리토연구소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한창때 100여 동의 건물에 1000명 이상이 근무했던 대규모 연구소인데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건물 두세 동, 동물위령비, 신사, 소화전 등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일본군이 항복한 뒤 관련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연구소 터가 학교 터로 바뀌면서 영원히 잊힐 뻔했던 역사를 살려낸 것은 이 지역의 시민·학생들이다. 이들은 1980년대 말부터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과거 연구소에서 일했던 사람을 끈질기게 만나 얘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 방문을 하면서 노보리토연구소의 무서운 실체를 복원해냈다. 소이탄을 매단 대량의 풍선폭탄을 미국 본토로 띄워 보내 6명을 숨지게 한 사실, 소를 대량살상하는 세균무기와 요인 암살용 독약 무기를 개발한 일, 중국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찍어낸 일 등이 이 과정에서 줄줄이 드러났다. 특히 41년에는 이 연구소의 연구원 7명이 중국으로 출장을 가 중국인 사형수 30명을 대상으로 독약 투입 실험을 하는 등 세균전 부대로 악명 높은 731부대와 긴밀하게 협력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큰 규모의 동물위령비도 정황상 ‘마루타’를 위령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이지대학은 시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 3월에 생물·화학무기를 개발하던 건물 한 동을 노보리토연구소 전시자료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시민들은 위조지폐를 찍던 목조건물도 보존하길 요구하고 있다. 옛 일본 육군의 부끄러운 역사를 보존하려고 애쓰는 일본 시민들이 있는 반면에, 731부대와 마루타를 ‘항일독립군’과 ‘포로’라고 버젓이 답변하는 한국 총리가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지럽기만 하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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