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01 18:37
수정 : 2009.12.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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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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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리스본조약이 발효됨으로써 유럽연합이 정치적 통합을 향한 중요한 걸음을 떼었다. 완전한 정치공동체로 갈지는 미지수지만 중요한 변화임엔 틀림없다.
지리적 용어로 유럽이란 명칭은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들이 처음 썼지만, 당시에는 유럽인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듯하다. ‘유럽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754년 스페인에서 나온 라틴연대기다. 이 연대기는 스페인을 침공한 이슬람 세력과 벌인 732년의 푸아티에 전투를 거론하면서 “질서정연한 아랍인들의 야영지를 관찰하는 유럽인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유럽인이라는 말은 기독교도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한 셈이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생각하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안동대 김복래 교수의 논문 ‘유럽 정체성의 역사’를 보면 18세기에야 이런 인식이 본격화한다. 1770년대에 루소는 “이제는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스페인인도, 영국인도 없으며, 오직 유럽인이 존재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같은 시대의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대륙의 어떤 부분에서도 유럽인은 자신을 외국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200여년이 지나서 ‘유럽인들의 정치적 결합체’가 모습을 구체화한 셈인데, 최근 유럽 역사에서 유사한 모습을 찾는다면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있다. 오스트리아·독일 민족부터 우크라이나 민족까지 모두 11개 민족으로 구성된 이 제국은, 민족들의 진정한 연대를 이루지 못해 결국 멸망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진단한다. 강성호 순천대 교수 등이 내놓은 <중유럽 민족문제>라는 책은 이 제국이 “민족적으로 연관된 이해관계의 갈등이라는 모순을 풀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의 묘혈을 팠”다고 지적한다. ‘유럽 정치공동체’의 성패도 결국 각국 시민의 연대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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