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8 18:25
수정 : 2009.12.2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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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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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말 시카고올림픽 유치 지원외교를 위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 참석한다고 발표했을 때 미국 언론이 제기한 궁금증은 올림픽 유치를 사전에 보장받았는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내 일정이 바빠 코페하겐에 가지 못한다며, “나보다 훨씬 뛰어난 연설가(미셸 오바마)를 대신 보냈다”는 농담까지 한 터였다. 시카고가 탈락할 경우 그가 입을 정치적 타격이 만만찮으리라는 것도 확실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오랜 측근인 밸러리 재럿 수석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위험부담을 결코 두려해본 적이 없다. 불리한 조건을 생각했다면 대통령에 출마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사전보장설을 부인했다. 결과는 시카고의 참패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체면을 구겼다.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원전 수주 담판외교를 하러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이미 한국의 원전 수주가 결정됐음을 직감했다. 청와대의 생리상 불확실한 일에 모험을 할 리 없다고 꿰뚫어본 것이다. 예상대로 원전 수주는 이미 이 대통령 출국 전에 결정난 상태였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뛴 국가대항전은 예전에도 많았다. 2002 월드컵 유치전의 경우도 사실상의 총사령탑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각국 정상들을 상대로 한 득표활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재벌그룹 총수들에게 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들을 한 사람씩 지정해 맨투맨 작전을 펼치도록 독려했다. 1996년 5월31일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됐을 때 김 대통령은 자신의 공을 부각시키는 화려한 이벤트를 원했다. 하지만 주변 참모들의 만류로 대국민 축하메시지를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에 비해 이 대통령은 원전 수주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만끽하고 있다. 대단한 홍보능력이 아닐 수 없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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