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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06 18:12 수정 : 2010.01.06 23:28

함석진 기자

1963년 6월10일 베트남 사이공. 도로 한복판에 앉은 틱꽝득 스님의 몸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그의 표정과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 장면은 미국 <에이피>(AP) 통신 사진기자였던 맬컴 브라운의 카메라에 담겼다. 응오딘지엠(고딘디엠) 정권의 노골적인 불교탄압 정책이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뒤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의 공작으로 권좌에 앉은 응오딘지엠의 모든 정책의 시작과 끝은 ‘친미 코드’와 밀어붙이기식 폭정이었다.

틱꽝득 스님의 살신 이후 ‘친미 꼭두각시 정권을 타도하자’는 투쟁이 전국으로 번졌다. 응오딘지엠 정권은 결국 다음해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3년 미국 록그룹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기계를 향한 분노)이 음반 하나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킬링인더네임’(…의 이름으로 죽이기)을 담은 이 음반 표지엔 맬컴 브라운이 찍은 그 사진이 들어갔다. 앨범엔 정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유린하는 미국을 신랄하게 꼬집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17년이 지난 2009년 말 영국 음악계를 뒤집는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에 킬링인더네임을 크리스마스 시즌 1위 곡으로 만들자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영국판 ‘아메리칸 아이돌’ 방송 프로그램인 ‘엑스 팩터’의 상업적 지배에서 음악을 구하자는 온라인 저항운동이었다. 성과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엑스 팩터 뒤엔 대형연예기획사·음반사·방송사가 있었고, 이들이 배출한 ‘아이돌 스타’는 매년 크리스마스 음반 판매 1위를 독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킬링인더네임의 완벽한 승리였다. 누리꾼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브리티시 레벌루션’(영국혁명)의 기쁨을 나눴다. 몇몇 대형기획사의 치밀한 ‘상품 개발-육성-론칭’을 통해 나온 아이돌 스타들이 공식처럼 거의 모든 매체를 장악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코리안 레벌루션’은 불가능할까?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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