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19 19:01
수정 : 2010.01.1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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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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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고통받는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이티에 대한 이런 식의 태도는 미국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 깊다. 미국 학자 로런트 두보이스의 책 <신세계의 복수자들: 아이티 혁명 이야기>를 보면, 프랑스혁명 와중인 1791년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에서 흑인 노예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프랑스 혁명 세력은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카리브해 식민지 방어 책임을 맡겼다. 영국과 싸우던 미국도 처음엔 아이티를 지지하는 듯했지만 1804년 아이티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예 혁명’을 통해 독립국이 되자 등을 돌렸다.
<투생 조항: 건국의 아버지들과 아이티 혁명>(고든 브라운 지음)이라는 책은 당시 미국의 최대 관심사가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복잡했다. 아이티가 경제적 요충이었기 때문이다. 18세기말 아이티는 세계 설탕 생산의 40%를 도맡고 커피는 서인도제도 총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부유한 땅이었다. 이런 나라와 무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세력과 노예제 옹호 세력 간의 논란 끝에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경제 제재를 선택한다.
아이티에 대한 백인들의 응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티 혁명을 역사책에서 지워버리고 아이티가 해방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대표 사례라고 비웃었다. 1938년 카리브해 출신의 C. L. R. 제임스가 쓴 <블랙 자코뱅>(한국에도 번역 출판됨) 같은 책 덕분에 아이티 혁명사는 복원됐지만, 경제는 그렇지 못했다. 독립 이후 지속된 백인들의 따돌림과 약탈로 자생력을 잃은 것이다. 아이티의 눈물은 이렇듯 역사가 깊지만 두보이스의 말처럼 “재로부터 나라를 세운” 불굴의 의지도 뿌리 깊기는 매한가지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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