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24 20:49
수정 : 2010.01.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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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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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11월,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법관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왕은 어떤 사건이든지 법관의 관할권을 박탈하고 직접 또는 신하를 시켜 재판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자신에게 패소를 선언하기도 한 법원과의 해묵은 갈등 끝에 나온 으름장이었다.
모두 경악한 가운데 법원장이던 에드워드 쿡 경이 나섰다. “국왕은 어떤 사건도 재판할 수 없습니다. 법원만이 법과 관습에 따라 판단하고 재판할 수 있습니다. 이는 … 기술적 이성과 오랜 학습 및 경험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는 법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은 “그럼, 내가 법 아래에 있다는 말이오”라며 발끈했다. 쿡의 그다음 말이 유명하다. “국왕은 사람들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신과 법 아래에 있습니다.”
법의 지배,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에피소드다. ‘사람 아래가 아니라 법 아래’(Non sub homine, sed sub lege)는 인치가 아닌 ‘법치주의’다. 법치주의는 애초 권력을 위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는 법 격언도 있다. 16세기 독일에선, 정의를 관철하고자 한다면 권세가의 사적인 이익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역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공평한 법 적용을 강조한 말이다.
400년 전과 비슷한 풍경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국사건에서 검찰이 잇따라 패소한 뒤 여당과 거대 족벌신문들이 재판에까지 간섭할 기세로 법원을 비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까. 그는 2008년 8월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민사법의 격언까지 인용하며 법치와 법질서 회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라는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버틴다. 딱한 일이다. 법치주의의 처음을 되돌아볼 때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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