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03 18:26
수정 : 2010.02.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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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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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어느 날 새벽. 미국 뉴욕 골목에서 한 여성이 칼에 찔렸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아파트 여기저기서 불이 켜졌다. 어디선가 여자를 가만두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범인은 도망가는 듯 보였다. 잠시 뒤 범인은 다시 나타나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칼을 휘둘렀다. 35분 동안 주위 아파트 주민 38명이 창문을 통해 이 장면을 목격했다. 그 가운데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여성은 이미 숨진 뒤였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는 냉정하고 나 살기 바쁜 곳이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무슨 일이든 얽혀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상황은 충격이었다. 많은 학자가 달라붙었다.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몇 번의 실험을 거친 뒤, 목격한 사람이 많으면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도 작아진다고 주장했다.
“왜 신고를 안 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급한 일이니 누군가 분명히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사실 내겐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위안이다. 기회만 있으면 늘 방관자가 되고 싶은 게 현대인의 내재적 속성이다.”(로런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리 로스 교수는 <인간과 상황: 사회심리학의 전망>이란 책에서 죄를 가르는 현대인의 도덕적-비도덕적 행동에는 내재된 성격적 특성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등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최근 영국 <비비시> 방송이 발행하는 한 잡지는 세계 어떤 나라가 죄를 많이 짓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35개국을 대상으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탐욕·나태·정욕 등 7대 죄악을 잣대로 삼았다. 한국은 포르노산업에 대한 국민 1인당 연간 지출액을 기준으로 측정한 정욕 부문에서 1위, 종합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나만 알고 사는 세상에서 우리 개인들이 쌓아가는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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