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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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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질병분류’(ICD)엔 ‘과도한 섹스충동’이라는 항목이 있다. 반면 정신과 치료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가장 최신판인 제4판의 정신질환 항목에선 이를 찾을 수 없다. 다만 ‘달리 특정되지 않은 성적 장애’라는 항목에서 섹스중독증(sex addiction)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것이 공인된 ‘질병’처럼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간혹 섹스중독증이 뇌신경에도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신경화학적 변화는 부인한다. 나아가 섹스중독증이 병이라는 건 신화일 뿐, 문화적 또는 다른 영향으로 인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2013년 나올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에선 섹스중독이란 말 대신 ‘성욕과잉’이란 단어를 사용할 예정이다. 아직 ‘중독’이라 부를 증상을 규정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온라인에 포르노그래피가 만연하고, 인터넷을 통해 섹스파트너를 찾기 쉬워진 요즘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더 보편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현상의 치료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알코올의존증처럼 12단계에 걸친 치료를 해주는 센터가 미국 곳곳에서 성업중인데, 6주 치료에 2만~4만달러가 드는 곳도 있다. 진짜 병인지, 치료가 병을 규정하는 건지 논쟁은 계속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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