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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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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 이어 칠레에서도 강력한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엔 경기도 시흥에서 지진이 발생한 터라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진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어서 다른 어떤 자연재해보다 더 두렵게 다가온다. 요즘은 부정확하나마 미리 예상할 수도 있지만 원인도 모르던 과거엔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왕에게 주로 책임을 돌렸다고 한다. 한국교원대 이인숙씨의 석사학위 논문 ‘고구려의 자연재해와 대책’을 보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의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지진이다. 모두 18차례가 기록되어 있는데, 피해를 자세히 적은 사례는 거의 없다. 문자명왕 11년(502년) 기록에 지진으로 민가가 쓰러지고 사망자가 생겼다고 한 것이 그나마 자세한 경우다. 큰 피해를 끼친 지진이 별로 없었다는 방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한 해에는 다른 자연재해도 함께 나타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지진이 잦았던 태조왕 말기(118~142년 세 차례 발생)엔 공교롭게도 왕과 그의 동생 수성의 권력다툼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자연재해를 왕의 자질이나 정당성과 연결해 생각하던 터라, 이때의 지진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사학자 이상배씨의 논문 ‘18세기 지진과 관료의 인식’을 보면, <조선왕조실록>은 1700~1799년 사이에 128회의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도 지진을 왕의 자질과 연결시키긴 마찬가지여서, 지진이 나면 신하들은 왕에게 자중하라고 요구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왕은 식사 때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감선)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곤 했다. 요즘은 어린이조차 이런 태도를 우습게 보겠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 겸손해지는 자세만큼은 현대인들도 배울 만하지 않을까 싶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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