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3.15 19:03 수정 : 2010.03.15 19:03

정남기 논설위원





탑이란 말은 애초 인도의 ‘스투파’가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탑파(塔婆)라고 음역돼 전해오다가 탑으로 굳어진 것이다. 스투파는 쌓아올린다는 뜻으로 유골을 매장한 인도의 무덤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불탑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당시 인도 풍습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을 나눠 8기의 탑을 세운 것이 기원이 됐다. 이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8기의 불탑을 해체해 유골을 발굴한 뒤 전국에 8만여기의 탑을 세우고 유골을 나눠 안치했다. 탑은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신성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에게서 나왔다는 구슬 모양의 사리(舍利) 역시 크게 보면 유골이다. ‘설리라’ 또는 ‘실리라’라는 인도말이 중국어로 음역되면서 사리가 됐다. 따라서 원리상으로는 모든 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교가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곳곳에 수많은 탑이 세워졌다. 그 많은 탑들에 모두 진신사리가 모셔졌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사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화장터로 찾아가 재가 묻은 흙이나 돌을 가져왔다. 또 나중에는 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을 탑에 넣기도 했다. 석가모니만 사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름 높은 고승이 열반에 들 때도 사리가 나온다. 이를 ‘승사리’라고 부른다. 이런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 모양의 조형물이 바로 부도(浮屠)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불가에선 사리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로 입적한 스님의 공덕과 수행을 평가하려는 풍토가 생겼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자는 취지겠지만 불교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법정 스님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