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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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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많은 세상이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따라 할 것도 많다. 아이폰에 트위터에, 자고 나면 등장하는 것들은 얼굴 익힐 새도 없다. 그냥 익숙한 것들과 살아도 크게 불편할 건 없겠지만, 불안한 맘이 문제다. 삐삐(무선호출기)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해는 1983년이다. 전화기 근처만 벗어나도 ‘연락 두절’되던 그때, 수시호출 가능한 삐삐는 그야말로 꿈의 기기였다. 당시 가격으로 20만~30만원 하던 이 물건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 휴대전화는 물론 개인용 컴퓨터도 없던 탓일까, 이 정도의 기술도 꽤나 정신을 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미국 심리학자 크레이그 브로드가 ‘테크노스트레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바로 그해다. 그는 1980년 모토롤라가 첫 제품을 내놓은 지 몇년 만에 무섭게 번지고 있던 무선호출기에 주목했다. 그러고는 빠른 기술 유행에 적응하지 못하고 괜히 심리적으로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차고 넘치는 정보기술 세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좀 행복해지셨습니까?” 미국 컨설팅 회사 그래비티 탱크에서 최근 스마트폰 사용자 1000명에게 물었더니, 책이나 신문 읽는 시간(-20%), 공부하는 시간(-10%) 등 주로 지적 활동에 관련된 시간이 크게 줄었다고 대답했다. 미국의 한 소설가는 도무지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며, 아이폰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어느 날 산채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꺼버렸다. “오두막의 유일한 정보 매체지만 별로 귀담아들을 것도 없는 한낱 시끄러운 소음이기 때문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그때그때 통제하지 않으면 듣는 쪽의 속틀을 마구 어지럽혀 놓는다”고 했다. 무가치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님도 제정신 차리기 어렵다 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야.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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