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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2 18:11 수정 : 2010.03.22 18:11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승려의 신분을 나라가 공인해 주던 도첩제가 제도화한 것은 중국 당나라 때다. 우리나라도 고려 말기인 충숙왕 때부터 시행해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더 강화됐다. 많은 양민이 승려가 되면 조세 수입이 감소하고, 군역 인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승려 신분증인 도첩을 받으려면 양반 자제는 포목 100필, 천민은 200필을 나라에 바쳐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조선 성종 때인 1492년에는 도첩제가 폐지돼 승려가 되는 길이 제도적으로 막혔다. 그 뒤 도첩제는 재시행과 폐지를 거듭하다 지금과 비슷한 승적(승려들의 호적)제도의 틀이 잡힌 것은 1911년 일제의 ‘조선사찰령’에 따라 전국 31개 본사가 도첩을 발급하던 때부터다. 지금은 조계종의 경우, ‘승려법’에 따라 구족계를 받은 비구와 비구니에게 승적을 주고 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승적이 있는 조계종 승려는 1만744명이다.

승적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조계종은 승려가 계율 등을 어길 때는 사안에 따라 승적에서 없애는 제적, 아예 승복을 벗기고 절 밖으로 쫓아내는 치탈도첩(멸빈) 등의 징계를 내린다. 1994년 조계종 사태 때는 당시 총무원장인 서의현 스님이, 98년 종단 사태 때는 8명의 승려가 멸빈의 수모를 당했다.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도 지난해 원장 선거 당시 승적 정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폭로한 명진 스님이 “정당한 명분 없이 (직영을) 강행한다면 제 발로 총무원에 가서 승적부를 지울 것”이라고 말했다. 승적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세상에 스스로 승적까지 지우겠다고 나선 그의 결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기야 부처님 법에 따라 사는 승려로서는 승적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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