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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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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느낌도, 위압당한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한숨을 돌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잠시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1978년 낭가파르바트(8125m)를 처음으로 무산소 단독등반한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정상에서 오히려 마음이 더 고요해졌다. “귓전을 울리는 허파 소리와 점점 빨라지는 심장 고동 소리가 한꺼번에 머리를 울려 견딜 수 없었”던 고통 끝의 깨달음이다.(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그런 메스너도 증거를 챙기는 일은 잊지 않았다. 바위틈에 박은 하켄에 알루미늄통을 매달고 그 안에 이름·루트·날짜를 적은 양피지를 남겼다. 10분 동안 사진도 찍었다. 뒷말을 남기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등정 의혹은 고산, 특히 첫 등정에서 자주 일어난다. 역사상 첫 8000m 이상 정복이라는 1950년 모리스 에르조그의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대해선 지금도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등정 사진이 이상하고 정상 부근 묘사도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동료 대원들부터 냉소적이었다. 그런 내용의 자서전 출판을 프랑스산악회가 막으려 했다는 의혹도 있다. 메스너에 이어 8000m급 14좌를 두번째로 완등한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도 1981년 마칼루(8463m)를 서북릉 새 루트로 단독등정한 뒤 사진이 없어 의혹을 받았다. 그는 등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네팔 정부의 연락장교에게 돈을 주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그런 억울함은 다음해 허영호씨가 정상 바위틈에서 쿠쿠츠카의 무당벌레 마스코트를 회수하면서 풀렸다. 여성으로는 처음이라는 오은선씨의 14좌 완등을 두고 시비가 일고 있다. 오씨와 경쟁해온 스페인 여성 산악인이 지난해 칸첸중가(8586m) 정복에 의문을 제기한 탓이다. 앞서 14좌를 완등한 엄홍길·박영석씨도 논란 때문에 한 번 오른 산을 다시 올랐다. 모두 기록을 앞세우는 등정주의 탓에 빚어진 일이다. 산을 오르는 것만으론 모자란 것일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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