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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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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의 크지 않은 나라 그리스가 요즘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전세계적 파장을 부를 수도 있는 경제위기에 직면한 까닭이다. 서양 문명 발상지 그리스는 20세기엔 한국과 비슷하게 외세에 시달린 나라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와 전쟁을 벌였던 이 나라는 2차 대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외세에 시달린다. 나치 독일이 1941년 그리스를 점령한 것이다. 독일 치하가 어땠는지는 41년부터 43년까지 기근의 직간접적인 여파로 숨진 사람이 25만명이라는 수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독일군은 ‘테러는 테러로 보답한다’는 전술을 기본으로 삼으면서 저항을 철저히 탄압했다. 독일이 연합군에 밀려나면서 44년에 자유를 얻는 듯했으나 이번엔 영국의 침공을 받는다. 송광성 한서대 교수는 ‘그리스와 미국의 전쟁’이라는 논문에서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영국군은 반혁명적 사대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과 그들을 지원하는 민중을 탄압했다”고 썼다. 독일이 물러간 직후 전 국토의 4분의 3을 지배하며 의회까지 구성했던 ‘민족해방전선’은 그해 12월부터 다시 점령군에 맞서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47년 초 영국이 손을 떼자 다음 차례는 미국이었다. 중동의 석유에 관심을 기울인 미국은 “독일군과 영국군에 협력하던 왕당파 정치인들과 경찰·군인을 앞세워 친미 정부를 구성”했다. 미국은 47년 3월부터 2년여 동안 군사원조 4억달러와 경제원조 3억달러를 제공했으나 대부분은 군사용 도로와 항구 건설에 쓰였다. 그래서 국민의 삶은 나아질 줄 몰랐다. 48년 봄에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극빈 구호대상자였다고 한다. 한국인과 흡사한 슬픔을 지닌 그리스 민중은 이제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이 가져올 한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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