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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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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낙서를 뜻하는 그라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그라피토(graffito)다. 미국 뉴욕 거리를 온통 그라피티로 긁고 다닌 인물 중 하나가 키스 해링이다. 지하철, 공원, 화장실 어디를 가도 그의 그림은 눈에 확 들어왔다. 굵고 단순한 선 몇 줄로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었다. 경찰은 지문 같은 그림 덕분에 늘 편하게 그에게 벌금을 매겼다. 그는 사랑, 평화, 공존을 이야기했고 핵전쟁, 인종차별, 빈부격차를 고발했다. “예술은 쉬워야 하며,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 장미셸 바스키아와 함께 그라피티를 현대미술의 한 분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앤디 워홀은 그의 큰 스승이자 작업 동료였다. 그들이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 미국 서부에선 스티브 잡스가 “좀더 쉽고 자유로운 컴퓨터”를 외치고 있었다. 잡스는 최초로 마우스와 아이콘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컴퓨터(매킨토시)를 구상했다. 당시 기술로는 한계도 많았다. 화면에 원도 그릴 수 없었다. 거기엔 보통 제곱근 연산이 필요한데 당시 컴퓨터 프로세서는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잡스는 동그라미도 못 그리는 컴퓨터는 주방용품만도 못하다고 개발자를 다그쳤다. 개발자는 모든 제곱수는 홀수 수열들의 합(1+3=4, 1+3+5=9, 1+3+5+7=16…)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제곱근 연산 없이 덧셈만으로 원을 그리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잡스는 어렵게 얻은 ‘표현의 자유’를 존경하는 해링과 워홀에게 가장 먼저 선물했다. 마우스를 잡은 워홀이 해링에게 이렇게 외쳤다. “맙소사, 내가 원을 그렸어.” 서울에서 지난달까지 워홀전이 열렸고, 다음달엔 해링전이 열린다. 그리고 그들을 존경한 잡스의 아이폰은 트위터로 그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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