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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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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서아시아 최대의 상업도시였던 이집트 푸스타트(옛 카이로)의 유대교 교회 에즈라 회당에는 문도 창문도 없는 방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한쪽 벽에 가늘고 긴 구멍만 있다. 이 방이 게니자(genizah), 곧 ‘거룩한 문서들의 창고’다. 게니자는 유대 관습 탓에 만들어졌다. 중세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 문서를 훼손하는 행위를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그런 문서가 낡으면 예배당의 다락방이나 지하실에 마련된 게니자에 던져넣었다. 문서들은 게니자에서 삭아 없어지거나, 때때로 절차를 갖춰 매장됐다. 카이로의 게니자는 건조한 사막 기후 탓에, 그리고 벽에 막혀 있어 오랫동안 잊혀진 탓에 멸실과 매장을 피했다. 19세기 말 회당 보수공사를 계기로 학자들이 발견한 게니자 문서는 중세 문화의 보고였다. 유대교 율법서인 토라 말고도 혼인계약·연애편지·도서목록 등 십수만건의 문건이 있었다. 수천통의 상업용 서신을 통해선 11~12세기 유대인의 교역이 지중해에서 홍해·인도·말레이반도까지 뻗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런 기록은 모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느님을 찬양하라’ 등의 어구를 담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세력이 반성해야 한다며 정부에 촛불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일부 신문도 대대적인 촛불 폄하에 나섰다. 자신들을 질타한 촛불의 기록을 제 뜻대로 고치려는 것이겠다. 왕의 실록 열람을 금지해 역사기록의 공정성을 지키려 한 조선왕조의 정신에도 한참 못 미친 짓이다. 그런 시도가 통하기엔 촛불의 기록이 너무도 생생하다. ‘촛불’이란 열쇳말로 검색하면 수십만 수백만의 삶과 생각이 끝없이 펼쳐진다. 곧 삭아 없어질 과거의 기록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왕의 언동을 하나하나 기록한 조선 <승정원일기>처럼, 촛불 앞에 반성한다던 2년 전 대통령의 말은 꼼짝 못할 증거자료로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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