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17 18:29
수정 : 2010.05.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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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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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댐 가득 물을 채우고 수문을 열었다. 그러나 … 63빌딩에 물이 차기는커녕 여의도가 물에 잠기지도 않는 것이었다. …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 사람이 금강산댐이 있는 위치에 물을 붓기 시작하면 여럿이 달라붙어 모형을 들어올렸다.”(강동순,
) 1986년 10월30일 밤 긴급 제작된 시뮬레이션(모의실험) 영상은 <한국방송>(KBS)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63빌딩이 절반 넘게 물에 잠긴 화면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시뮬레이션의 효과는 대단했다. 한나라당 전신인 민정당의 이춘구 사무총장은 “댐이 폭발되면 100여m의 물기둥이 수도권을 휩쓸어 수소탄 이상으로 수도권을 파괴시킬 것”이라며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신문들도 “금강산댐이 파괴되면 12~16시간 뒤 수도권이 완전 수몰되고, 중부전선의 3개 군단 시설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것”(<동아일보> 86년 11월6일치)이라고 거들었다. 전국에선 북한 규탄 궐기대회가 이어졌다. 김종호 내무장관은 “지금 시점은 정치인이든 누구든 시국의 중대성과 심각성에 관해 인식을 함께하고 용공·좌경세력을 다함께 뿌리뽑아야 할 때”라며 북풍몰이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시뮬레이션은 턱없이 과장된 것이었다. 당시 이규효 건설부 장관은 금강산댐의 높이가 200m 이상이고, 최대 저수용량이 200억t에 이를 것이라고 했지만 2003년 완공된 금강산댐은 120여m 높이에 저수용량은 26억t에 불과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 왜곡된 수치를 적용함으로써 엉뚱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 복잡한 시뮬레이션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제작한 정교하고 현란한 입체(3D) 영상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할 것이다. 금강산댐 시뮬레이션과 얼마나 다를지 지켜볼 일이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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