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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5 18:30 수정 : 2010.05.25 18:30

함석진 기자





돌고래는 다른 포유류처럼 바다에서 육지로 나와 진화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에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돌고래 지느러미 안엔 지금도 길쭉한 손가락 모양의 뼈가 들어 있다. 바다에서는 옷도 집도 난방도 필요없다. 땅에 붙어사는 포유류와 달리 3차원 바다 공간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다. 먹이의 풍족함도 육지는 바다와 비교가 안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가 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은,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가 없는 돌고래가 인류보다 덜 행복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인간이 바다를 버렸을 때부터였을까? 자유로운 비상은 꿈이 됐다. 시인 유하는 돌고래의 선택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돌 같은 단호함으로 이 땅을 버린 것이다. … 돌고래는 이미 수만년 전에/ 집과 옷과 먹이와 상상력의 슈퍼마켓인/ 바다의 행복을 깊이 사색했던 것이다.”

천상병 시인도 날고 싶어했다. 감금과 고문의 고통, 대화 없는 정치현실에 가로막힌 인간은 마음속으로 새를 불렀다. “죽어가는 자의 입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슬하고, 한번도 정각을 말한 적 없는 시계탑 침이 자정 가까이서 졸고 있다. 계절은 가장 오래 기다린 자를 위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너, 새여….”

다시 보복과 전쟁을 얘기하는 오늘,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은 시치미 떼고 법칙처럼 흘러간다. 그 제멋대로의 공식을 우리는 아직 해독하지 못한다. 분침은, 때려잡고 쳐부수는 몇십년 전 냉전시기로 돌아가고 있다. 날고 싶은 천진함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지지 않는다. 때로 언어는 날이 서야 하고, 사유는 허술한 일상을 조여야 한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별수 없이 삶일 뿐’인 현실에서, 날개 없는 날갯짓은 무력하기만 하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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