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2 18:27
수정 : 2010.06.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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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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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는 2차대전의 암호해독가이며 뛰어난 수학자였던 앨런 튜링에 대해 영국 정부를 대신하여 사과문을 발표했다. 1952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를 ‘화학적 거세형’에 처했던 일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당시 영국 법정은 튜링이 동성애를 인정하자 외설죄로 단죄하고 치료를 한다며 여성호르몬을 주사했다. 현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2년 뒤 자살로 41년의 삶을 마감했다.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 이후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형 도입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의원들에 이어 정부 관련부처까지 도입 검토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점에서 아동성범죄를 강력히 응징하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약물을 이용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줄여 재범을 막는다는 화학적 거세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화학적 거세는 튜링 사건이 단적인 예지만 도입 초기부터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나치가 다른 열등한 인종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본격 사용했고, 1970년대 스웨덴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불임시키는 데 활용했다. 또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재범 방지 효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05년 미국 <심리와 법학회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선 거세를 당한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다른 성범죄자의 재범률과 다르지 않음이 확인됐다.
그런 점에서 아동 성폭력범을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간주해 대화나 심리치료 등을 할 경우 더 나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법의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권침해적인 새로운 형벌을 도입하기보다는 성매매와 성폭력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인식을 고쳐나가는 게 아동 성폭력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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