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13 18:19
수정 : 2010.07.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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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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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는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가 처음부터 나쁜 취지의 제도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엽관제 시대를 열었다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1829년 ‘공직순환 정책’을 내건 것은, 동부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정치와 관직을 서부 개척민 등 대중에게 개방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엽관제는 공직의 특권화를 막고 권력을 신사집단에서 정당으로 넘겼다는 점에서 양당제와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장치로 인식됐다.
엽관제의 약점은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관직을 사냥감이나 전리품(spoils)으로 여기면서 공공연한 매관매직과 정치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공화당의 제임스 가필드가 1880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선거 전에 이미 대부분의 자리가 정파간 거래로 내정돼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당시 공화당 당권다툼의 핵심 쟁점도 엽관제 개혁이었다. 온건파인 ‘하프브리드(Half-Breeds)파’는 능력과 업적에 입각한 실적주의(merit system) 도입을 주장했지만, ‘확고부동한 당원’이라는 뜻의 ‘스톨워트(Stalwart)파’는 엽관제 고수를 주장했다. 하프브리드인 가필드는 취임 직후 골수 스톨워트라는 찰스 귀토에게 암살당했다. 귀토는 파리 주재 영사를 희망했지만, 가필드로선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1883년 현대적 직업공무원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연방정부공무원법(일명 펜들턴법)이 제정된다. 130년 전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선조직이 정부·공기업은 물론 은행 등 민간기업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번 케이비금융지주 인사 개입과 같은 일이 “100건은 더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엽관주의가 남아 있는 미국에서도 여태껏 공공부문 말고 민간기업 자리까지 ‘전리품’이 된 일은 없다. 이 정도면 엽관제가 아니라 엽직제(獵職制)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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