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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4 18:14 수정 : 2010.07.14 18:14

김종구 논설위원

우리 영화사상 아직도 허장강을 뛰어넘는 악역 배우를 찾기는 힘들다. 그가 스크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면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악역 전문 배우라고만 부를 수 없는 “천의 얼굴을 한 배우”였다.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애증은 남달랐다.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번 할까”라는 그의 명대사는 아직도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허장강은 또한 코믹 연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그가 1975년 9월21일 호흡장애로 숨지기 직전 연예인 축구대회에서 계속 헛발질을 하는 것을 관중들이 코미디 연기로 오해해 폭소를 터뜨렸을 정도다.

허장강에 비하면 박노식은 악역을 훨씬 덜 맡았다. 오히려 그는 한 시대를 휩쓴 걸출한 액션 스타로 기억된다.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온 외팔이(<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 싸움꾼(<애꾸눈 박>) 등 숱한 영화에서 그는 독보적인 매력을 뽐냈다. 하지만 박노식 하면 뭐니뭐니해도 떠오르는 게 <용팔이> 시리즈다. “내가 목포서 올라온 용팔인데 말이시”라는 그의 걸쭉한 사투리는 훗날 숱한 조폭 영화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표준어’가 된 연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엊그제 퇴임의 변을 통해 “나라고 신성일·김진규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허장강·박노식 역할을 할 사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권과 청와대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이 악역을 맡았다는 이야기다. 두 배우의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까지 고려한 발언이라면 참으로 탁월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의 최대 임무는 대통령의 의중을 비롯해 국정운영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가감없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이 수석이 이런 원칙에 충실했는가라는 물음에 이르면 악역론은 부질없어 보인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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