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25 20:27
수정 : 2010.07.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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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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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정빈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 장관은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올브라이트와 포옹해보니 가슴이 탱탱하더라”라고 말했고, 방송에 방청객으로 나온 여성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이야기도 했다. 당시 많은 기자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부분 눈감았고, 한 인터넷 언론만 이를 보도했다.
보도가 나온 뒤 <한겨레> 편집회의에서도 이 사안을 보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편집회의 참가자 가운데 한 사람뿐이었던 여성 편집위원은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남성 편집위원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반대의 핵심 논거는 사석에서 한 그 정도의 발언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여성면에 관련 내용을 싣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희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일화였다.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편집위원들조차 성희롱에 대해서만큼은 민감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공직자들의 성희롱·성추행 행위가 이어져 왔다. 최연희 의원, 우근민 제주 지사,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최근의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과 고창 군수에 이르기까지. 남녀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성희롱을 금지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데는 음주문화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술자리에선 성적 농담이 여전히 최고의 안줏거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꼭 술 탓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중심 사회라는 점일 게다. 남성중심적 사고에 젖어 있다 보니 잘못된 성인식이 몸에 체화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해결의 관건은 남성들이 인권감수성을 갖도록 만드는 일이다. 온정주의 대신 일벌백계가 필요한 까닭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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