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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6 20:39 수정 : 2010.07.26 20:39

신기섭 논설위원

빈곤은 멀쩡하던 사람도 삶의 의지를 잃게 만들기 쉽다. 그런데 영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를 보면 빈곤층에 있어서 무기력보다 어쩌면 더 비극적인 행동 양태가 있다. 자발적 또는 의식적 ‘조기 퇴화’다.

영국 뉴캐슬대학의 행동과학자 대니얼 네틀은 영국의 8660가구 실태 조사를 분석해, 빈곤층의 첫 출산 시기가 부유층보다 훨씬 빠르다는 걸 확인했다. 비슷한 연구는 미국에도 있다. 미시간대학 연구진의 2005년 조사를 보면, 흑인 여성 첫 출산의 34%가 10대 때 이뤄진다고 한다. 백인의 비율은 19%였다. 가난한 이들의 조기 출산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비교 연구에서도 확인되는 추세다.

빈곤층은 왜 더 빨리 아이를 낳을까? 흔히 교육을 제대로 못 받거나 의료시설 이용이 어려운 점을 꼽는 반면 네틀은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포유류는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을수록 자식을 빨리 낳는데, 이런 경향이 사람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 살기 힘들고 미래도 없다면, 아이를 낳을 바에는 일찍 낳는 게 낫다. 영국 극빈층의 기대 수명(평균 수명)이 50살 정도라니 그럴듯한 분석이다. 빈곤층의 조기 출산과 실업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3대 대학 연구진의 조사도 있다. 1993년엔 15~17살 흑인 여성 가운데 6.4%가 엄마가 됐지만 2000년에는 이 비율이 4.5%로 줄었다고 한다. 감소의 주된 이유로는 일자리 증가가 꼽힌다. 반면 백인의 경우 둘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네틀 같은 학자들은 빈곤층이 일찍 세상을 뜰 것을 대비해 ‘빨리빨리’ 사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현상을 막는 지름길은 아무래도 생활 여건 개선이다. 빈곤층 쌀 지원 예산까지 깎으려는 한국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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