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8 20:18
수정 : 2010.08.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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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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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에게 인재를 구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어떤 인재를 쓰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사에서 가장 흔히 거론되는 인재 등용의 사례는 제갈량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집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고사는 잘 알려져 있다. 한나라 유방도 인재를 쓰는 데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초나라 항우의 신하 진평이 자신을 찾아오자 과감하게 그를 군의 요직에 앉혔다. 뇌물을 받은 전력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대업을 이루는 데 쓸모가 있다고 판단해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진평은 나중에 유방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했고,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더 중요한 사례는 당 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은 황태자인 형 이건성을 제거한 뒤 그의 측근이었던 위징을 기용한다. 위징은 이건성에게 동생(이세민)을 죽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태종은 개의치 않았다. 직언을 서슴지 않는 위징의 기개와 능력을 더 높이 샀던 것이다. 위징은 이후 태종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뒤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나를 말렸을 것”이라고 후회했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이처럼 훌륭한 인재를 구해 쓴 덕분에 태종의 치세는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이른바 ‘정관의 치’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했다. 40대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로 기용하는 등 내각의 면모를 혁신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재오 특임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등 주요 진용을 모두 충실한 측근들로 짰다. 그나마 포용성을 발휘했다는 게 친박계 유정복 의원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기용한 것 정도다. 여당 내 반대파도 포용하지 못하는 한국 현실에서 정관의 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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