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11 21:36
수정 : 2010.08.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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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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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버릇처럼 확률을 잘 따진다. 세상일이 뭐 하나 딱 부러지는 게 없으니, 그거라도 잘 따져볼 도리밖엔 없다. 그 숫자를 따라 우산을 챙기고, 원서를 넣고, 때론 주식을 사고 집을 판다. 그러나 ‘내 생각의 그물’을 벗기 힘든 우리에게 확률은 그저 무의미한 숫자가 되기도 한다.
로또복권의 1등 당첨 확률은 알려진 대로 814만분의 1이다. 감이 잘 오질 않는다. 80㎏짜리 쌀 세 가마니를 큰 통에 넣고 검은 쌀 한 톨을 섞는다. 눈을 가리고 쌀 한 톨을 뽑았을 때 검은 쌀일 확률은? 쌀 한 가마니의 쌀알 개수는 260만개 정도니까 780만분의 1이다. 그래도 복권을 사고 도박을 하는 이유는 뭘까? 결과가 불확실할 때 효용의 기대치를 보고 선택을 한다는 ‘기대효용 이론’도 있고, 확률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프로스펙트 이론’도 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죽어도 안되는 일도 죽어라고 한다.
확률에 조건이라는 것이 끼어들면 더욱 우리를 혼동시킨다. ‘오 제이 심슨’ 사건은 자주 인용된다. 평소 심슨이 아내를 때리고 폭언을 일삼았다는 증언을 내세워 피해자 쪽이 유죄를 주장하자, 심슨 쪽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가 그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경우는 천명 중의 하나(0.1%)라는 조사 결과를 제시해 무죄를 인정받았다. 판단은 옳았을까? 심슨 사건의 경우 이미 아내가 죽었다. 여기선 ‘매 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평소 아내를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을 봐야 한다. 그 확률은 80%가 넘는다.(정재승 <과학콘서트>)
요즘 인기 좋다는 스마트폰 ‘앱’들을 보면 확률 프로그램이 많다. 질문을 몇 개씩 따라가면 부자 될 확률, 머리가 빠질 확률, 혼자 살 확률까지 알려준다. 앞날이 불투명한 요즘 세태의 반영인 듯도 싶지만, 자꾸 엉성한 숫자로 치환돼가는 삶의 조건들이 씁쓸하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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