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29 21:23
수정 : 2010.08.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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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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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의 선승 조주 스님의 법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금으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를 견디지 못하고, 나무부처는 불을 지나지 못하며, 진흙으로 빚은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200여년 뒤 야부 도천이 금강경을 두고 쓴 선시에도 같은 대목이 있어, <금강경 오가해>에 전해진다. 애초 뜻은 겉모습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속의 불심을 찾으라는 것이다. 조주 스님의 법문도 ‘진짜 부처는 마음속, 보리수 아래에 있다’(眞佛內裏坐菩提)로 이어진다.
어제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사퇴 소식을 듣고, 선시의 그 대목을 다른 뜻으로 새기게 된다. 물 밖에선 그럴듯한 진흙 불상도 물에 씻기게 되면 허름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40대 젊은 보수의 기수’라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도 검증이라는 물을 만나면서 그 실상이 드러났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던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성에서 크게 이긴 뒤 바로 다음의 작은 성인 아이에선 의외로 패배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원인을 찾았더니 유력 씨족 출신인 아간이 여리고성 싸움의 전리품 일부를 몰래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성경은 여호와의 곳간에 바쳐질 물건에 손을 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아간의 죄’ 때문에 싸움에 졌다고 썼다. 생존을 위한 어려운 싸움을 벌이던 이스라엘은 공동체의 결속이 깨질까 두려워 그런 규칙을 정했을 것이다.
아간이 나중에 정착할 때 종잣돈으로 삼으려 했던 금과 은, 시날(바빌로니아)산 고급외투에선 노후 대비라는 몇몇 공직 후보자들의 부동산투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스라엘은 아간을 엄하게 벌했다. ‘공정한 사회’를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이들을 벌하기는커녕 되레 높은 자리에 지명했다. 진흙과 나무도 구별하지 못하고, 무엇이 공동체에 필요한지도 모르는 그 안목이 걱정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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