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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13 18:25 수정 : 2010.09.13 18:25

함석진 기자

1550년 에스파냐(스페인) 한 성당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주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였다. 결과에 따라 원주민 노예화의 정당성 여부가 갈리는 중요한 자리였다. 신학자 세풀베다는 날개 달린 뱀 모양을 한 아스테카 신 석상을 보여주며 “그들은 기괴한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스럽고 열등한 동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라스 카사스 수사가 맞섰다. “그들이 우리와 뭐가 다른가? 그들이 믿음이 없다고 해서 신이 수탈과 학살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다.” 논쟁 며칠 만에 원주민들도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엉뚱한 의견이 달렸다. 현지에서 필요한 노예는 동물에 더 가깝고 야만적인 존재들을 쓰라는 것이었다.(장클로드 카리에르, <바야돌리드 논쟁>) 수백년을 이어간 인류의 또다른 죄악, 아프리카 노예 공출의 시작이었다.

식민지 비극이 그친 것도 아니었다. 라스 카사스 수사는 중남미에 다녀온 뒤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2007년 번역서 출간)를 통해 양심선언을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식민지 기독교인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인디오를 돼지처럼 순식간에 물어 찢어버리도록 개를 훈련시켰다. … 원주민이 우리를 한명 죽이면 원주민 백명을 죽여야 한다는 내부 규칙도 만들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믿음을 강요했고, 저항은 처절하게 응징했다. 그렇게 마야·아스테카·잉카 문명이 무너졌다. 이후 수백년 동안 복음과 총칼로 무장한 서구 문명의 탐욕 앞에 공존은 없었다.

미국에서 다시 성경이 시험을 받고 있다. 무엇이 테러를 불렀나 반성하는 기미는 없다. 코란은 박해받고 정치인들은 이스라엘, 석유, 눈앞에 닥친 선거를 놓고 계산기만 두드린다.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묻는다. “차라리 이 땅에 선교사가 오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보기에 좋지 않았겠나.”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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