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26 17:50
수정 : 2010.09.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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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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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에서 난지도행 정기여객선을 타고 남쪽으로 2시간 반 정도 내려가면 조그만 섬 풍도가 있다. 지금은 야생화 군락지와 낚시터로 유명하지만 청일전쟁의 시발점인 풍도해전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1894년 7월25일 아침 나니와호 등 일본 순양함 3척이 풍도 앞바다를 지나 조선으로 향하던 청국 군함과 영국 상선을 선전포고도 없이 격파했다. 일본은 이 풍도해전 승리를 계기로 동북아 패권을 장악하고 조선 병탄을 본격화하게 된다.
청일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1895년 1월 대만 등과 함께 댜오위다오(조어도·일본명 센카쿠열도)를 점령해 일본령에 편입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대만은 중국에 반환했지만 조어도는 아직까지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일본은 이달 초 조어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을 영해침공 혐의로 구속했다.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토권을 확실하게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강력한 항의와 압박에 굴복해 지난 24일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중국에서는 풀려난 선장을 ‘영웅선장’이라고 한껏 치켜세우며 일본 쪽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에 격침됐던 중국이 100여년 만에 부활해 ‘조어도 전장’에서 사실상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청일전쟁 패배로 동북아 패권을 빼앗기고 일본에 2억냥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 등 한반도 주변 열강들이 패권 확장을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이 풍도해전을 교과서에 수록해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역사 현장인 풍도를 꽃사진을 찍고 낚시나 즐기는 섬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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