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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05 19:06 수정 : 2010.10.05 19:06

여현호 논설위원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는 해당 관청이나 관찰사에게 소장을 냈다가 억울하면 사헌부에 상소하고, 그래도 안되면 신문고를 치도록 했다. 지금의 검찰·감사원 구실을 했던 사헌부는 그렇게 제출된 소장을 심사해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 사헌부 도장을 찍어 돌려줬다. 이를 ‘퇴장’(退狀)이라고 한다. 소각하 또는 불기소처분의 통고인 셈이다. 신문고는 의금부 당직청에 뒀다. 당직청은 신문고를 통해 올라온 상소에서 사헌부 퇴장 등을 살펴 왕에게 올렸다.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과 함께 의금부의 중요한 사법기능이었다.

그런 절차가 아니라도 사헌부와 의금부는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다. 사헌부의 수사가 불공정하다는 여론이 일면 즉각 의금부로 사건을 이첩했고, 의금부의 수사가 미진하면 사헌부가 나섰다. 사법기관 사이의 견제로 전횡을 막았던 이런 장치는 연산군 때 무너졌다. 연산군은 자신의 실정을 사헌부가 비판하자 대사헌 등 사헌부 수뇌부를 의금부에 투옥했다. 사헌부 지평 관직도 없앴다. 연산군 11년(1505년)에는 의금부 당직청을 밀위청(密威廳)으로 바꾸고, 직접 승지를 보내 죄수를 신문하도록 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한을 줬다. 사실상 독점적 사법권을 쥔 밀위청에선 매일같이 사대부들이 매를 맞고, 왕을 비방하는 말을 감시했다고 실록은 전한다.

검찰시민위원회가 가수 엠시몽에 대해 기소 의견을 냈다. 창원에선 검사의 기소 의견을 뒤집은 일도 있다. 모두 검찰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를 묵살해도 강제할 수단은 없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뒤집어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을 강제기소한 일본의 검찰심사회의 권한에 비하면 시늉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독점적 기소재량이 문제라면 이를 견제할 장치를 마련하는 게 근본적인 처방이다. 그런 모델은 조선시대에도 얼마든지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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