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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17 21:10 수정 : 2010.10.17 21:10

권태선 논설위원

중국이 15일 막을 올린 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 외부의 압박과 경제 격차로 인한 내부의 불만을 극복할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할지 관심을 모은다. 또다른 관심사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군사위 부주석 승진 여부다. 2012년 국가주석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그에 대한 권력 승계가 차질 없이 이행될지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혁명원로인 시중쉰의 아들로 이른바 태자당이다.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성공한 인물이란 부정적인 뜻이 내포된 태자당이란 표현은 위안스카이의 아들에게 처음 붙여졌지만 현재는 중국 공산혁명 원로들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 됐다. 공산정권 수립 후 혁명 유공자 자녀들은 특권층이란 인식을 갖지 못하게 엄격한 혁명교육을 받았다. 일반 백성이 굶으면 함께 굶어야 했다. 또 권력의 승계자보다는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돼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게 장려됐다.

하지만 문혁을 거쳐 혁명세대가 해체되면서 태자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대두됐다. 문혁을 거치면서 정치적 삶의 위험성을 실감했던 태자당의 다수가 경제 부문으로 진출해 국영기업을 장악한 뒤 자신의 연고를 이용해 외국 자본과 중국 시장을 연결시키며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한 탓이다. 이런 현실은 백만장자의 91%가 당 간부의 자제라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조사로도 확인된다. 태자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고조됐고 이는 정계에 진출한 태자당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덩샤오핑의 아들인 덩푸팡이 1997년 13전대회에서 정치국원이 못 됐을 뿐 아니라 중앙위원 후보 투표에서 최하위를 차지했고 시진핑 역시 가까스로 후보위원이 됐던 게 단적인 예다. 이런 정치적 어려움을 견디고, 지방 성 등에서 능력을 보인 뒤에야 시진핑은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태자당이 정치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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